교회를 비판하지 말라는 말에 대해
2017년 11월쯤 왼팔이 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가 안 통해서 그런가 생각하고 넘겼던 것이 일주일이 넘도록 저림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그체적인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신경이 눌리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버텨볼까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2018년 4월에 왼쪽 팔꿈치 부분을 수술했다. 수술 후에 저림 증상은 조금 약해졌지만 여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몇 개월에 한 번씩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물론 ‘안아키’라는 병원과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프면 병원에 간다. 병에 따라,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더 큰 고통을 감수하기도 한다. 저림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수술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치료는 때론 아플 테지만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조금 더 낫게) 만든다. 아픔을 견뎌야 치료할 수 있다.
여름 성경학교를 마치고 고향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친구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이번에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내 글이었다. 세습에 대해, 그리고 세습 판결을 지연하고 있는 재판국을 비판하는 글이었는데, 그 글을 두고 아버지와 친구분이 설전을 벌이신 듯하다. 아버지의 친구 분은 교회를 그리 너무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교회를 비난 해서는 안 되며 사랑으로 감싸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미 세습은 이루어졌으니 그냥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교회가 서로 싸우면 외부에서 그 모습을 보고 교회를 욕한다는 것이다. 마치 치료하는 과정이 아프니 병을 치료하지 말자는 것이다. 병에 이미 걸렸고, 치료가 너무 아프니깐 그냥 안고 살자는 말이다.
물론 잘못을 묵인한다면 당장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그로 인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잘못을 묵인하는 것은 교회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죽이는 일이다. 교회를 향한 비판이 아프고 쓰라리더라도 비판을 통해서 교회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견뎌야 한다. 당장 아프다고 치료받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치료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제발 ‘교회니깐 잘못을 비판하지 말라’는 헛소리는 하지 말자. 그런 헛소리가 오히려 교회를 몰락의 길로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