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조금 늦은 제주도 한라산 등반기

비롬 2026. 2. 7. 14:30

언젠가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던 겨울 한라산 등반의 꿈.

2026년을 맞아 등반 후 한 해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일정을 잡았다.

21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5시쯤 제주도에 도착했다. 차를 렌트하고, 숙소에 방문해 짐을 풀었다.

오전 5시부터 입산이 가능하기에 제주도 맥도널드에서 저녁을 먹고 등반하며 먹을 음식을 챙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헬로 제주
제주도에서 처음 빌린 렌트카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2일 새벽 4시에 기상한 후 이번 등반 코스인 관음사 주차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비가 흩날렸고, 점차 눈으로 바뀌었다. 3년 전이었나? 그때도 폭설로 인해 등반의 꿈이 좌절된 적이 있던지라, 걱정스러운 마음이 피어났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주차장에는 나 외에도 다른 분들이 등산을 위해 삼삼오오 모여계셨다. 준비했던 아이젠을 착용하고, 산에 올랐다.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눈도 내리는 상황이라 주변은 매우 깜깜했다. 휴대폰 불빛으로 길을 비추며 한발 한발 내디뎠다.

관음사 등산로 입구

 

혼자 와서 그런지 좀 무섭기도 했다. 분명 내 앞에 출발한 분도 계셨고, 바로 다음 입장한 팀도 있었는데, 어느새 혼자 남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무작정 걸었다. 관음사 코스는 시간은 짧지만 정말 힘들었다. 숨 막히는 계단들과 오르막길, 그리고 내리막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거기다 눈보라까지. 마지막 쉼터를 뒤로하고 정산으로 향할 땐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먼저 간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위안으로 삼으며 나아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 나왔다. 눈보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서 정상이 곧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정상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한라산 백록담을 나타내는 표지석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

 

정상에는 일부 등산객과 군인들 무리가 있었다. 아마도 2월의 시작을 맞아 등반한 것 같았다. 날이 좋았다면 백록담도 보고 했겠지만, 그런 행운이 이번에는 없었다. 보이는 건 안개와 눈보라, 그리고 매서운 바람뿐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왔던 코스 그대로 하산을 시작했다. 보통 다른 코스로 하산한다던데, 주차장에 차가 있기에 다시 그 험난한 코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산하던 중, 갑자기 제주도에 폭설 주의보가 발령됐다. 그래서였을까? 분명 올라올 때 보였던 길을 눈이 막아섰다. 보이는 건 울타리 윗부분뿐이었다. 앞에 가던 분이 사선으로 밟으며 그 길을 뚫고 나갔다. 나 역시 그 모습을 보며 같은 방식으로 눈길을 헤쳐 나갔다. 그러다가 한번 눈에 휩쓸려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스틱으로 겨우겨우 헤쳐나와 마지막 쉼터에 왔더니 입산 금지 표지판이 걸려있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쉬고 있었고, 금지 표지판 너머에서 나타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통제인데 어떻게 들어갔냐는 눈빛을 뒤로한 채 그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하산하는 길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무릎과 허벅지가 떨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코스에선 미끄러져 내려왔다. 진짜 말 그대로 누워서 썰매를 타듯 미끄러졌다. 비록 옷은 쫄딱 젖었고, 주머니에도 눈이 한가득 들어갔지만, 매우 편했다.

체감상 올라갔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난 후 겨우 관음사 등반로 입구에 도착했다. 분명 오후, 그것도 4시나 5시쯤 됐을 거로 생각했지만, 12시였다.

내려와서 다시 숙소로 이동한 후 아이젠을 씻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누웠다.

드디어 하산 완료

 

그렇게 4시간쯤 지난 후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카페로 향했다. 지인이 부탁한 원두를 사고, 커피를 마셨다. 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 했지만, 제주도 음식점은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 그래서 근처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으니, 음식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이번 등산을 통해 배운 점은, 절대로 관음사 코스로 올라가지 않겠다는 거다. 다음에 다시 오르게 된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평탄한 코스로 오를 거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바다 한번 보지 않고 가는 건 제주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차를 반납하기 전에 바다로 향했다. 숙소에서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니 닭머르이라는 곳이 나왔다. 아마 갈대숲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았다. 바다와 갈대의 조합은 참 예뻤다. 그리고 어제 등산할 때와 달리 날씨도 좋았다. 그렇게 해안가를 드라이브하고, 차를 반납한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닭머르 풍경
닭머르 풍경
바다와 갈대
제주 바다
돌아오는 비행기

 

 

나의 겨울 한라산 등반은 이번이 끝이 아닐 것이다. 분명 내려올 땐, ‘다신 안 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백록담을 못 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엔 제발 날씨가 좋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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