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비롬 2026. 6. 6. 10:23

박민규 작가가 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은 후 한참을 그 감격에 젖어있을 무렵, 

목사님 한 분이 추천해 준 책. 

이 책은 박민규 작가가 2003년 낸, 첫 소설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고대 전설로 내려올 법한 야구팀의 이름이 책의 가장 맨 처음을 장식하고 있지만, 이 책은 야구에 관한 소설은 아니다. 물론 야구나 삼미 슈퍼스타즈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기는 한다.

 

이 소설은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야구팀을 통해 삶을 고찰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조성훈'이라는 작중 인물은 삼미의 야구가 진짜 야구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조성훈은 삼미가 우승을 목표로 하는 프로가 아니라고 말한다. 삼미는 '야구를 통해 자기 수양을 목표로 하는 팀'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프로 야구 역사상 입에 담기도 어려운(프로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처참한) 기록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삼미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자신의 야구를 완성한 팀이라는 게 조성훈의 설명이다.(조성훈의 주장일 뿐, 진짜 삼미 팀이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건 너무 쉽잖아'라는 주인공의 말에 조성훈은 '틀렸어. 그래서 그건 가장 어려운 야구'라고 단언한다.

이 세계가 유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사회는 우승을 목표로 하는, 또는 더 큰 성공을 목표로 하는 '프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우승을 목표로 하게 하고, 프로로서의 삶을 꿈꾸도록 유혹한다. 때로는 협박하고, 때로는 조롱하고, 때로는 칭찬하며 끊임없이 프로를 목표로 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그런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야구, 즉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자세를 견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조성훈은 삼미가 실제로 그 유혹에 넘어갈 뻔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는 프로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착취한다. 그 착취는 고통스러운 방식이 아니라 프라이드와 성취감 등을 통해 이뤄진다. '프로'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진행되는 그 착취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탈진하게 된다. 평범하게 사는 삶은 어느새 '실패'로 규정된다.

 

평범한 야구를 했던 삼미는 프로의 세계에서 6위, 그 당시 꼴찌를 기록했다. 그냥 꼴찌도 아니고 압도적인 꼴찌였다고 한다.(물론 나는 그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아서 정확히 모른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창단됐고, 태어나기 전에 전설로 사라졌다.)

평범한 야구였다면 사실 3~4위를 했어야 맞겠지만, 프로의 세계에선 '평범'이 '꼴찌'가 되는 거다. 뼈가 부러질 듯 자신을 혹사하고 노력해야 겨우겨우 순위가 올라간다.

 

높은 순위에 오르면 달라질까? 주인공은 열심히 공부해 일류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 안에서도 서울 출신과 지방 출신으로 나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한다.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집단에서도 이 소속의 콤플렉스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사실 그래서, 인간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프로의 세계란 그런 거다. 평범은 실패가 되고, 그렇다고 일류 집단에 들어간다고 거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혹사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돌아온 조성훈은 사회 생활에 찌들어있는 주인공을 보며 '9회 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상황' 같았다고 말한다.(작중 배경이 IMF가 터지기 전이라 더욱 그러했을 것 같다) 그리고 결국 해고된 주인공에게, 마지막에 들어온 공이 '스트라이크' 같지만, 사실 '볼'이었다고, 아웃돼 끝난 게 아니라 1루로 진출해 쉬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은 그 공을 스트라이크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 공은 이제 부디 삶을 즐기라고 던져준 볼이라고.

 

주인공과 조성훈은 사람들을 모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창단한다. 삼미의 야구를 하며 조금씩 회복된 주인공은 이렇게 고백한다.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의 가락처럼 끊기 쉬운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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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도 가만히 돌아보게 됐다. 높은 실업률과 재취업을 못해 늘어만 가는 '쉬었음 청년'들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직장이라는 곳에 너무 목을 매고 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해고당할까 봐, 또는 그만 두면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고, 다시 취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만한 직장을 또 찾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불합리도 그저 꾹 참고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은, '프로'로 살 필요가 없는데, 프로로 살길 선택한 게 아닐까. 

세상이 사람들을 착취하기 쉽도록 만든 그 구조에 나 역시 은연중 몸을 담은 게 아닐까. 

 

책 속에 조성훈이 군대 선임 이야기를 하며 '돼지 발정제'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그는 우리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이 돼지 발정제를 먹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세상이 우리 몰래 성공과 돈을 추구하는 돼지 발정제를 먹였고, 이를 먹은 사람은 반드시 반응이 올 수밖에 없다. 시간의 차이일 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며 지금 내가 있는 곳에 그렇게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한강의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자유가 찾아왔다. 비단 직장뿐만 아닐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의 기준과 가치들, 그 모든 게 사실 은연중 세계가 나에게 심은 돼지 발정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꼭 5km를 30분 안에 뛸 필요는 없다. 도시의 좋은 아파트에 살 필요도 없다. 시골의 흙집은 왜 안 되겠나. 돈을 좀 못 벌더라도, 하루 한 끼 먹고 살 정도만 된다면 큰 문제가 될까. 

직장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던 주인공은 '비로소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고 고백한다. 시간에 쫓긴다는 건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며,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라고 말한다. 

 

'프로'라는 이름을 벗어나 '삼미의 야구'를 하는 것. 우승이 목표가 아니라 야구를 통해 심신을 수양하는 것.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것. 그것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나도 오늘부터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이다.

 

 

-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ps.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통해 이 책까지 알게 됐다. 그런 점에서 박정민 배우에게 감사한다. 파반느는 박정민 배우를 통해 알게 됐고, 읽게 됐다. 그리고 그 책이 나를 여기로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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