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한 조각
170725 Q.T 출 23:1-9 본문
1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4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정의, 위에 열거된 규칙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아닐까? 오늘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 예시들이 있지만, 진실과 공의, 약자에 대한 긍휼이 주축이 되는 것 같다.
나의 삶을 되돌아 보자. 나의 삶에서 진실과 공의와 약자에 대한 긍휼이 자리 잡고 있는가? 그저 말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위가 있는가?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하지 말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다. 오늘날에는 마치 약자가 선인것 처럼 포장될 때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경우가 많이 있다. 진보쪽으로 가다보면 이런 경우가 많이 있다. 약하니깐, 가난하니깐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 내 안에도 그런 기질이 있어서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이 편칠 않다. 그 사람의 상황과 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약자이면서 잘못한 사람을 무조건 적으로 두둔해서는 안 된다. 요즘 '토지'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농부도 있다. 부자라고 다 악덕이 아니고 가난한 농부라고 선한 존재들도 아니다. 사람들이 사는 것이 그렇다. 소설처럼 부자는 악당이고 가난한 자는 선한 사람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며, 사회적인 약자인 악한 사람이 있고, 부자지만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 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따라서 오늘 말씀에 나온 것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의 처한 상황으로 인해서 우리의 행동이 무조건 선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약자의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선을 행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촛불혁명이 아니었나? 우리는 폭력이 아닌 비폭력으로 정권을 바꾸어냈다. 이것은 가능하다. 비록 느리지만, 바뀌지 않을 것 같지만 바뀐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조건 두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성의 인권을 상향 시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메갈리안이나 워마드가 선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잘 분별해야 한다. 나 역시 잘 분별해야 할 것이다. 약자라고 무조건 두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와 존중은 필요하다. 그것은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정신이 아니던가.
이제 사역자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선과 악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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