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한 조각
기본을 지키자 본문
운동을 마친 후 씻기 위해 샤워장에 갔다. 문밖에서부터 다른 사람이 씻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실 놀랍지 않지만, 문맥상 놀랐다고 하겠다) 샤워장 입구를 열어보니 신발(보통 슬리퍼)이 없다. 뭔가 싶어서 안을 들여다보니, 한 학우가 슬리퍼를 신은 채 샤워를 하고 있었다. 보통 샤워장은 슬리퍼를 신고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고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혹시 경고문이 떨어졌나 싶어 샤워장 출입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출입문 밖에는 ‘소망관 탈의실 및 샤워실은 슬리퍼를 벗고 들어가 사용해주시길 바랍니다.’는 문구가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분명하게 붙어 있었다. 문맹이 아닌 이상(차라리 문맹이라면 좋겠다. 개선의 여지가 있을 테니. 그러나 슬프게도 신대원 또는 대학교까지 온 사람이 문맹일 리는 없다.) 이 문구를 못 보고 지나쳤을 리 없다. 물론 이해는 간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샤워장 탈의실 바닥이나 샤워장 내부가 더럽게 느껴져 슬리퍼를 착용했을 것이다.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이나 더러워진 장판을 보며 불쾌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경고문이 붙어 있음에도 무시하고 슬리퍼를 신지 않았을까?
오늘 아끼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 교회는 장래도 어둡다.”
무슨 뜻일까? 현재 불법을 저지르거나 막말과 거짓말, 불법을 일삼으며 한국 교회를 망치고 있는 목사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장차 신학을 공부해 목회하겠다는 신학생들에게서조차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이야기는 다른 맥락에서 나왔지만, 이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를 꿈꾸는 신학생이 본인이 조금 더 편하게 이용하자고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의 장래 역시 어두울 뿐이다. 물론, 슬리퍼를 벗고 이용하라는 규칙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큰일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고작 슬리퍼를 신은 것뿐인데 이게 뭔 큰 잘못인가?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내가 너무 과민 반응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학우가 한 명이 아니다. 위에서 놀랍다고 말했지만 이런 학우를 이삼일에 한 번꼴로 보는 것 같다. 물론 동일인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다. 많은 학우가 기본조차 지키지 않고 있다. 이런 작은 일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교회에서 정의와 정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본인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타인을 섬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본인 발이 더러워지는 건 싫어하면서, 본인이 신고 들어온 더러운 슬리퍼로 인해 바닥이 더러워지고, 그 바닥을 다른 누군가가 밟는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섬길 수 있는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신학생 시절부터 기본예절을 지키지 못한다면 결국 목회자가 되어서도 같은 짓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섬김받는 걸 좋아하고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소도둑이 처음부터 소도둑은 아니었단 사실을 기억하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양심과 배려도 지능이다. 남들은 비굴해서 예절을 지키고 있는 줄 아는가? 배려를 더 해주는 것이다. 머리가 있으니까. ‘이렇게 하면 저 사람 기분이 안 좋을 텐데’ 해서 맞춰주는 것이다.”
제발 생각을 하고 살자. 본인이 싫은 건 다른 사람도 싫다. 본인은 아무런 생각 없이 슬리퍼를 신었겠지만 그걸 보는 다른 사람의 기분은 매우 나쁘다. ‘생각’이란 걸 하자. 남들은 좋아서 규칙을 지키는 게 아니다. 그것이 공동생활에 필요한 것이기에 지키는 것이다. 불필요하다면 모르겠지만, 필요한 규칙을 지키는 건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다. 이런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은 굳이 신학을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만두라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직 배워가는 단계니 조금씩 더 나아지리라 믿어본다. 마음을 고쳐먹든 신학을 그만두든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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