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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글리

개혁의 파도여, 계속해서 밀려 오라

D Cloud 2019. 10. 31. 23:51

노: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

유: 오지요. 100% 오죠.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

노: 아, 근데 그런 시대가 오면 나는 없을 거 같아요.

유: 아니 뭐 그럴 수는 있죠. 후보님은 첫 물결이세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오는데 그 첫 파도에 올라타신 분 같아요. 근데 이 첫 파도가 가려고 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이 첫 파도가 못 가고 그 다음 파도가 오고, 그 다음 파도가 와서 계속 파도들이 밀려와서, 여러 차례 밀려와서 거기 갈 수는 있겠죠. (중략)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갈 거에요. 그렇게 되기만 하면 뭐 후보님이 거기 계시든 안 계시든 뭐 상관있나요?

노: 하긴 그래요. 그런 세상이 되기만 하면 되지. 뭐 내가 꼭 거기 있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사족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통령 중 한 분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은 나의 신학을 형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쨌든, 다시 돌아와서 이 두 분의 대화를 보다 보면 유시민 이사장의 이야기가 오늘날 교회의 개혁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신학춘추 편집장을 하면서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었다. 신학춘추가 내 대에서 끊기지 않고 다음 기수로 이어져 그 명맥을 이어가게끔 하자는 마음이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 모자랐고, 어설펐으며,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신학춘추는 끊어지지 않고 기어이 다음 기수에게로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도 신학춘추는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개혁을 위한 우리의 싸움도 이것과 같다. 우리는 개혁의 시발점이 아니다. 그리고 끝도 아니다. 우리는 교회 개혁의 과정 속에 있는 하나의 물결이다. 우리 역시 우리가 꿈꾸던 그 세상에 가 닿지 못할 수 있다. 지금 상황을 봐선 못 갈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달려가다 사그라지는 파도 중 하나일 뿐일지 모른다. 힘찬 몸짓으로 시작했으나, 바람과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물거품으로 사그라지는 파도.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는 그 세상에 갈 것이다. 비록 우리는 사라질지언정 누군가는 반드시 그런 세상에 가 닿을 것이고, 그 세상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사랑하며 울고 웃을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그 물결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개혁의 물결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한 몸부림이 끊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파도쳐,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가 그곳에 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교회의 내부이든 외부이든 아무 상관없다. 내부에 남는다고 기존 질서에 순응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외부로 나간다고 해서 배신자나 방관자가 되진 않는다. 내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 남아서 그 물결을 흘려보내면 되고, 외부로 나온 사람들은 밖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끝까지 함께 하면 된다. 어디에 서 있든지 우리가 개혁의 파도를 계속 이어간다면 언젠가, 정말 언젠가 우리가 꿈꾸던 그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다.

 

어제는 아무런 희망 없음에 암울해하다가 오늘은 또 이렇게 희망을 노래해본다. 조울증인가? 하긴, 요즘 시대에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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